Bible&Christ&Church
그리스도를 닮은 겸손과 거룩 (여름수련회를 다녀와서)
mindpine
2009. 7. 31. 17:39
내가 과거에 속했던 모임인 "파이어니어 선교회"에서 주최한 수련회를 다녀왔다.
여러 교회가 함께 했던 수련회라서 "연합수련회"란 이름을 붙였지만, 과거의 그것과 거의 다름없었다.
"부흥, 바로 나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게 달려 돌아가실 때 찢어진 휘장은, 우리 개개인이 모두 성전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제사장을 통해서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었던 인간이,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힘입어 스스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자녀"가 되었다.
세상이 달라지려면, 먼저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 속에 부흥이 시작되어야 한다.
모두가 "내가 달라져야"란 생각을 갖고, 그리스도에서 멀어진 마음으로부터 회복되어야 한다.
내가 달라져야 할 부분은 크게 2가지가 있었다.
1. 그리스도를 닮아서 겸손하기
- 내 노력으로 구원 받은 것은 당연히 아니다. 그 사실은 부정할 수가 없다.
하지만 얻은 지식, 쌓아놓은 재물, 유지한 관계에 대해서는 "내가 한 것처럼" 느껴진다.
그걸 이룰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은 깊은 창고에서 꺼내는 수고를 통해서만 찾을 수 있다.
교만은 감사하지 못함에서 나온다. 내 수고로 얻은 열매를 내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에서 나온다.
그렇기에 누군가 나에게 선물을 주면 감사하지만, 내가 일하고 받아야 할 돈에 대해서는 감사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다. 노력에 대한 보상은 이루어져야 한다. 보상이 없다면 노력하지도 않게 된다.
하지만 노력을 보상 받을 수 있는 환경은 내가 만들어놓은 게 아니다.
그런 환경은 누군가 노력해서 구축한 것이기에, 난 그걸 누리고 있음을 감사해야 한다.
겸손함은 입술에서 시작한다.
악기는 130% 연습하면, 공연 때 90% 발휘된다고 한다.
마음과 말도 마찬가지이다. 130% 겸손하면 90%가 말로 표현된다.
자기가 제일 잘났다고 말하고 다니면서, 스스로 겸손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교만한 사람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면서도, 인간의 몸으로 세상에 오셔서 인간 이하의 대우를 받고 돌아가셨다.
내가 아무리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으며 오래 참는다고 해도, 그분보다 더 겸손한 사람이라고 할 수는 없다.
더욱더 겸손해야 한다. 그리스도를 닮아 겸손하게 되는 것은 평생의 과제이며, 삶의 목적이다.
2. 그리스도를 닮아서 거룩하기
- "머리 위로 새가 지나가는 것은 막을 수 없어도, 둥지를 틀 때까지 그냥 두면 안 된다"는 말이 있다.
"유혹을 받을 수는 있지만, 유혹에 넘어가는 건 안 된다"는 뜻으로 이해하고 표현한다.
하지만 머리 위로 새가 지나갈 때 자꾸 그걸 가만 두면, 결국 새가 둥지를 틀게 된다.
새가 지나갈 때마다 미리 준비해둔 막대기로 후려치는 걸 반복해서, 새가 무서워 지나가지도 못하게 만들어야 한다.
유혹을 받는 환경은 정해져 있다. 거의 예상이 가능하다. 다들 자신의 약한 부분을 스스로 잘 알고 있다.
그 부분을 차단해야 한다. 처음부터 그 자리에 있지도 않아야 한다.
자꾸 죄 짓게 하는 환경에서 벗어나야 한다.
돈을 버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거룩함을 유지하는 것이다.
그리고 거룩함을 유지할 수 있는 환경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그럼 유혹을 완전히 이길 수 있다.
유혹을 잘 받고 자꾸 넘어지면서,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하는 것은 핑계이다.
정말 어려워도, 미리미리 예방하면 다 된다.
비가 올 것 같으면 집 밖을 나서지 말든지, 우산이나 우비를 갖고 나가는 것이 지혜로운 행동이다.
원래 죄인이라 어쩔 수 없다는 말은 틀렸다.
답이 없는 문제를 내놓고 틀렸다고 혼내는 선생님은 없다.
모든 보기가 답인 문제를 내놓고 맞췄다고 칭찬하는 선생님도 없다.
맞는 보기와 틀린 보기가 있는 문제를 풀 때 칭찬도 처벌도 의미가 있는 것이다.
인간은 완전할 수 있다. 그게 가능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내가 완전하니 너희도 완전하여라"고 명하셨다.
불가능한데 그렇게 말씀하셨다면, 하나님은 공정하지 못한 분이고, 의롭다고 할 수 없다.
그런 하나님을 믿는 것은 참으로 불행한 일이다.
그리스도가 얼마나 많은 유혹을 받으셨는지는 성경에 잘 나타나 있지 않다.
40일 금식 후 사단의 유혹 외에는 발견하지 못했다.
그는 인성과 신성을 모두 갖고 계신데도 거의 모든 상황에서 인성만을 사용하셨다.
인간으로 오신 그리스도가 아무런 유혹을 받지 않으셨다면, 사단의 유혹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또 그가 12년간 혈루증으로 앓던 여자가 옷깃을 만졌을 때 누군지 찾으셨던 건 연기가 아니었다.
그는 정말로 모르셨다. 그는 우리와 하나도 다르지 않은 인자(人子)로 세상에 오셨다.
인간이 모든 유혹을 이기는 것은 어려운 것이지만,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인간으로 오신 그리스도가 그게 가능하다는 사실을 직접 몸으로 보이셨다.
그 분을 닮기 원한다. 역시 내 평생의 과제이다.
여러 교회가 함께 했던 수련회라서 "연합수련회"란 이름을 붙였지만, 과거의 그것과 거의 다름없었다.
"부흥, 바로 나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게 달려 돌아가실 때 찢어진 휘장은, 우리 개개인이 모두 성전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제사장을 통해서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었던 인간이,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힘입어 스스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자녀"가 되었다.
세상이 달라지려면, 먼저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 속에 부흥이 시작되어야 한다.
모두가 "내가 달라져야"란 생각을 갖고, 그리스도에서 멀어진 마음으로부터 회복되어야 한다.
내가 달라져야 할 부분은 크게 2가지가 있었다.
1. 그리스도를 닮아서 겸손하기
- 내 노력으로 구원 받은 것은 당연히 아니다. 그 사실은 부정할 수가 없다.
하지만 얻은 지식, 쌓아놓은 재물, 유지한 관계에 대해서는 "내가 한 것처럼" 느껴진다.
그걸 이룰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은 깊은 창고에서 꺼내는 수고를 통해서만 찾을 수 있다.
교만은 감사하지 못함에서 나온다. 내 수고로 얻은 열매를 내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에서 나온다.
그렇기에 누군가 나에게 선물을 주면 감사하지만, 내가 일하고 받아야 할 돈에 대해서는 감사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다. 노력에 대한 보상은 이루어져야 한다. 보상이 없다면 노력하지도 않게 된다.
하지만 노력을 보상 받을 수 있는 환경은 내가 만들어놓은 게 아니다.
그런 환경은 누군가 노력해서 구축한 것이기에, 난 그걸 누리고 있음을 감사해야 한다.
겸손함은 입술에서 시작한다.
악기는 130% 연습하면, 공연 때 90% 발휘된다고 한다.
마음과 말도 마찬가지이다. 130% 겸손하면 90%가 말로 표현된다.
자기가 제일 잘났다고 말하고 다니면서, 스스로 겸손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교만한 사람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면서도, 인간의 몸으로 세상에 오셔서 인간 이하의 대우를 받고 돌아가셨다.
내가 아무리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으며 오래 참는다고 해도, 그분보다 더 겸손한 사람이라고 할 수는 없다.
더욱더 겸손해야 한다. 그리스도를 닮아 겸손하게 되는 것은 평생의 과제이며, 삶의 목적이다.
2. 그리스도를 닮아서 거룩하기
- "머리 위로 새가 지나가는 것은 막을 수 없어도, 둥지를 틀 때까지 그냥 두면 안 된다"는 말이 있다.
"유혹을 받을 수는 있지만, 유혹에 넘어가는 건 안 된다"는 뜻으로 이해하고 표현한다.
하지만 머리 위로 새가 지나갈 때 자꾸 그걸 가만 두면, 결국 새가 둥지를 틀게 된다.
새가 지나갈 때마다 미리 준비해둔 막대기로 후려치는 걸 반복해서, 새가 무서워 지나가지도 못하게 만들어야 한다.
유혹을 받는 환경은 정해져 있다. 거의 예상이 가능하다. 다들 자신의 약한 부분을 스스로 잘 알고 있다.
그 부분을 차단해야 한다. 처음부터 그 자리에 있지도 않아야 한다.
자꾸 죄 짓게 하는 환경에서 벗어나야 한다.
돈을 버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거룩함을 유지하는 것이다.
그리고 거룩함을 유지할 수 있는 환경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그럼 유혹을 완전히 이길 수 있다.
유혹을 잘 받고 자꾸 넘어지면서,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하는 것은 핑계이다.
정말 어려워도, 미리미리 예방하면 다 된다.
비가 올 것 같으면 집 밖을 나서지 말든지, 우산이나 우비를 갖고 나가는 것이 지혜로운 행동이다.
원래 죄인이라 어쩔 수 없다는 말은 틀렸다.
답이 없는 문제를 내놓고 틀렸다고 혼내는 선생님은 없다.
모든 보기가 답인 문제를 내놓고 맞췄다고 칭찬하는 선생님도 없다.
맞는 보기와 틀린 보기가 있는 문제를 풀 때 칭찬도 처벌도 의미가 있는 것이다.
인간은 완전할 수 있다. 그게 가능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내가 완전하니 너희도 완전하여라"고 명하셨다.
불가능한데 그렇게 말씀하셨다면, 하나님은 공정하지 못한 분이고, 의롭다고 할 수 없다.
그런 하나님을 믿는 것은 참으로 불행한 일이다.
그리스도가 얼마나 많은 유혹을 받으셨는지는 성경에 잘 나타나 있지 않다.
40일 금식 후 사단의 유혹 외에는 발견하지 못했다.
그는 인성과 신성을 모두 갖고 계신데도 거의 모든 상황에서 인성만을 사용하셨다.
인간으로 오신 그리스도가 아무런 유혹을 받지 않으셨다면, 사단의 유혹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또 그가 12년간 혈루증으로 앓던 여자가 옷깃을 만졌을 때 누군지 찾으셨던 건 연기가 아니었다.
그는 정말로 모르셨다. 그는 우리와 하나도 다르지 않은 인자(人子)로 세상에 오셨다.
인간이 모든 유혹을 이기는 것은 어려운 것이지만,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인간으로 오신 그리스도가 그게 가능하다는 사실을 직접 몸으로 보이셨다.
그 분을 닮기 원한다. 역시 내 평생의 과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