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인으로서의 동성애 문제
동성애 성향은 장애다. '장애'라는 용어는 가치중립적인 용어다. 일반적인 사람들과 다르다는 것. 한 손만 갖고 태어난 사람이 장애인이라 불리는 것은 그가 비장애인들과 다르게 태어났기 때문이다.
사회에서 장애인들이 조화롭게 살아가려면 스스로 장애인임을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 선천적 시각장애인이 '난 이렇게 태어났으니 장애인이 아니다. 비장애인과 똑같이 대우해달라.'고 하는건 말이 안된다. 그럼 그들에겐 점자도, 지하철 시각장애인용 블럭도 없었을 것이다. 다만 사회가 장애인들에 대해 심한 편견이 있었고, 그들에게 많은 피해를 준 사실은 큰 잘못임을 인정한다.
동성애 성향은 선천적인 정신장애다. 수많은 장애인들이 그렇듯, 장애는 난치보다는 불치에 가깝다. 평생을 그렇게 살아야 한다. 절대적이진 않지만, 그들은 불행하다. 하지만 사회와 사람들이 그들에게 어떻게 대우하느냐에 따라 반드시 불행하게 되는 것만은 아니다.
세상은 동성애 성향을 장애로 여기느냐 개인적 취향으로 여기느냐 하는 고민을 하고 있다. 그들을 장애로 여기자니 자신들은 장애가 아니라고 말하고, 취향이라고 하자니 선천적으로 그렇게 태어났다고 한다. 어쨌든 세상은 그들을 인정하고 동성애 결혼을 허용해주니 마니 의견이 분분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기독교인으로서 동성애 성향을 가진 자들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1. 동성애 성향을 가진 자들이 쾌락을 위해 자신을 속인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정신지체 장애인의 행동을 보며, "저 자식 일부러 멍청한 척 하는 거다."라고 말하지 않는 것과 같다. 그들이 태어날 때부터 그렇게 태어났 듯이, 동성애성향을 가진 자들에게도 그렇게 말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들은 그렇게 태어났기에, 교회에서 그들을 정죄해서는 안 된다.
2. 이성과 결혼해서 살 수 있도록 가르치고 도와야 한다.
성경에는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라는 말씀이 없다. 결혼한 사람을 사랑하라는 말씀만 있을 뿐이다(에베소서 5장). 물론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해야 더 사랑할 수도 있겠지만, 사랑하는 감정이 크지 않더라도 결혼해서 충분히 사랑하며 살 수 있다. 결혼에서의 사랑이란 5프로의 감정과 95프로의 노력으로 이루어진다.
배우자가 멀쩡히 살아있는데 사랑이라는 이유만으로 남편의 친구나 아내의 동생과 불륜을 저지르는 것을 좋게 생각하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감정보다 약속이 훨씬 더 중요하다. 감정을 좇아 이성을 버리는 것은 패망의 지름길이다. 감정은 언젠가는 식기 때문이다. 그 날이 오면 자신의 선택에 대해 두고 두고 후회하게 될 것이다.
동성애 성향 때문에 죽어도 이성과 결혼하지 못하겠다는 경우만 아니면, 이성과 결혼해서 사는 것이 미래를 생각했을 때 더 행복한 길이다.
3. 이성과의 결혼이 불가능한 경우 독신으로 살도록 가르치고 도와야 한다.
동성애 성향의 유무를 떠나, 동성애 행위는 성경적으로 죄다. 성경 레위기 18장에서는 이성간의 결혼을 벗어난 모든 성행위를 죄로 규정하고 있다. 거기에는 근친, 불륜, 혼전, 성매매, 수간 등의 기타 관계가 포함되어 있다.
사람이 살면서 죄를 안 지을 수도 있지만(마5:48), 그렇게 살았던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 우리는 모두 죄인이다(롬3:23). 하지만 그렇다고 죄를 허용할 수는 없다. 만약 위에 언급한 죄들을 상습적으로 짓는 성도가 있다면, 그 성도는 교회에서 쫓아 내는 것이 옳다(고전5:13).
동성애도 마찬가지다. 단지 동성애 성향을 갖고 있는 것은 선천적이기에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동성애 행위는 엄연히 죄이기 때문에 교회에서 그 죄를 짓지 않도록 하는 것이 당연하다. 동성애 성향이 있는 성도가 이성과의 결혼생활을 불가능하다고 여길 경우, 독신으로 살아야만 죄를 짓지 않을 수 있기에, 그렇게 살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동성애 성향을 가진 자가 교회의 도움을 받기 힘든 이유는 교회의 무조건적 정죄가 가장 크다. 거기에 동성애 성향을 가진 사람이 스스로 교회에 반발하여 가르침을 받으려 하지 않기 때문에 교회는 동성애 성향인들을 다 놓치고 있다. 지금이라도 수많은 동성애 성향인들과 동성애자들에 대한 편견과 정죄를 버리고 그들을 사랑으로 품고, 성경에서 어떻게 말씀하는지 잘 가르쳐야 한다.
동성애 성향은 장애다. '장애'라는 용어는 가치중립적인 용어다. 일반적인 사람들과 다르다는 것. 한 손만 갖고 태어난 사람이 장애인이라 불리는 것은 그가 비장애인들과 다르게 태어났기 때문이다.
사회에서 장애인들이 조화롭게 살아가려면 스스로 장애인임을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 선천적 시각장애인이 '난 이렇게 태어났으니 장애인이 아니다. 비장애인과 똑같이 대우해달라.'고 하는건 말이 안된다. 그럼 그들에겐 점자도, 지하철 시각장애인용 블럭도 없었을 것이다. 다만 사회가 장애인들에 대해 심한 편견이 있었고, 그들에게 많은 피해를 준 사실은 큰 잘못임을 인정한다.
동성애 성향은 선천적인 정신장애다. 수많은 장애인들이 그렇듯, 장애는 난치보다는 불치에 가깝다. 평생을 그렇게 살아야 한다. 절대적이진 않지만, 그들은 불행하다. 하지만 사회와 사람들이 그들에게 어떻게 대우하느냐에 따라 반드시 불행하게 되는 것만은 아니다.
세상은 동성애 성향을 장애로 여기느냐 개인적 취향으로 여기느냐 하는 고민을 하고 있다. 그들을 장애로 여기자니 자신들은 장애가 아니라고 말하고, 취향이라고 하자니 선천적으로 그렇게 태어났다고 한다. 어쨌든 세상은 그들을 인정하고 동성애 결혼을 허용해주니 마니 의견이 분분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기독교인으로서 동성애 성향을 가진 자들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1. 동성애 성향을 가진 자들이 쾌락을 위해 자신을 속인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정신지체 장애인의 행동을 보며, "저 자식 일부러 멍청한 척 하는 거다."라고 말하지 않는 것과 같다. 그들이 태어날 때부터 그렇게 태어났 듯이, 동성애성향을 가진 자들에게도 그렇게 말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들은 그렇게 태어났기에, 교회에서 그들을 정죄해서는 안 된다.
2. 이성과 결혼해서 살 수 있도록 가르치고 도와야 한다.
성경에는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라는 말씀이 없다. 결혼한 사람을 사랑하라는 말씀만 있을 뿐이다(에베소서 5장). 물론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해야 더 사랑할 수도 있겠지만, 사랑하는 감정이 크지 않더라도 결혼해서 충분히 사랑하며 살 수 있다. 결혼에서의 사랑이란 5프로의 감정과 95프로의 노력으로 이루어진다.
배우자가 멀쩡히 살아있는데 사랑이라는 이유만으로 남편의 친구나 아내의 동생과 불륜을 저지르는 것을 좋게 생각하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감정보다 약속이 훨씬 더 중요하다. 감정을 좇아 이성을 버리는 것은 패망의 지름길이다. 감정은 언젠가는 식기 때문이다. 그 날이 오면 자신의 선택에 대해 두고 두고 후회하게 될 것이다.
동성애 성향 때문에 죽어도 이성과 결혼하지 못하겠다는 경우만 아니면, 이성과 결혼해서 사는 것이 미래를 생각했을 때 더 행복한 길이다.
3. 이성과의 결혼이 불가능한 경우 독신으로 살도록 가르치고 도와야 한다.
동성애 성향의 유무를 떠나, 동성애 행위는 성경적으로 죄다. 성경 레위기 18장에서는 이성간의 결혼을 벗어난 모든 성행위를 죄로 규정하고 있다. 거기에는 근친, 불륜, 혼전, 성매매, 수간 등의 기타 관계가 포함되어 있다.
사람이 살면서 죄를 안 지을 수도 있지만(마5:48), 그렇게 살았던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 우리는 모두 죄인이다(롬3:23). 하지만 그렇다고 죄를 허용할 수는 없다. 만약 위에 언급한 죄들을 상습적으로 짓는 성도가 있다면, 그 성도는 교회에서 쫓아 내는 것이 옳다(고전5:13).
동성애도 마찬가지다. 단지 동성애 성향을 갖고 있는 것은 선천적이기에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동성애 행위는 엄연히 죄이기 때문에 교회에서 그 죄를 짓지 않도록 하는 것이 당연하다. 동성애 성향이 있는 성도가 이성과의 결혼생활을 불가능하다고 여길 경우, 독신으로 살아야만 죄를 짓지 않을 수 있기에, 그렇게 살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동성애 성향을 가진 자가 교회의 도움을 받기 힘든 이유는 교회의 무조건적 정죄가 가장 크다. 거기에 동성애 성향을 가진 사람이 스스로 교회에 반발하여 가르침을 받으려 하지 않기 때문에 교회는 동성애 성향인들을 다 놓치고 있다. 지금이라도 수많은 동성애 성향인들과 동성애자들에 대한 편견과 정죄를 버리고 그들을 사랑으로 품고, 성경에서 어떻게 말씀하는지 잘 가르쳐야 한다.